• Young s. Shin

Updated: Dec 25, 2017






한국인처럼 단체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민족도 많지 않을 것이다. 두명이 만나면 단체를 만들고 세명이 모이면 대자를 붙여 대 무슨 무슨 단체라고 홍보하며 네명이 모이면 다툼으로 갈라져 두개의 단체로 늘어난다는 웃지 못할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단체를 만들기는 쉽지만 유지하고, 본래의 취지를 살려 단체의 목표를 확립하기는 아주 어렵다. 자신이 어떤 임무를 맡으면 참 열심히 봉사하고 노력하지만 그 임무가 끝나면 그 단체에 참여 조차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본다. 미국에 사는 우리는 우리의 아픈 곳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자유 시장 경쟁속에서 자신의 업소는 자신이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지방 정부, 주 정부, 연방 정부를 상대로 자신들의 주권을 지키는 것은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미국의 각종 사업체들은 각 업체를 지켜주는 단체를 만들고 있고 이를 이익 집단 이라 우리는 부른다. 예를 들면 세탁업에 있어서 극소수의 한국인을 포함한 약 20-30%의 세탁소는 National Cleaners Association(NCA)라는 단체가 이끌고 있고, 한인들은 주로 각 State 별로 세탁 협회를 두고 있다. NCA는 영리를 목표로 하고 회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다 유급 직원으로 되어 있다. 물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들이 내는 회비가 뉴저지 세탁 협회와 대비하면 약 4-5배나 되고 그들은 소수이지만 거의 회비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 생각하고 있다. 반면 한인들은 자신들이 속한 단체에 관심이 거의 없다. 혼자서 오직 열심히 헝그리 정신으로 각개 전투는 잘 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에서의 승리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한 예로 외국인 소유 세탁소의 규모는 한인과 대비 몇배에서 몇십배 규모가 크다. 그리고 그들은 지속적으로 세미나를 개최하고 회원들은 무료가 아닌 수백불씩 지급하는 각종 행사에 참가하여 사소한 것이라도 배우고 그것을 접목하여 이익을 창출하니 점점 나아지는 것이다.


반면 한인들은 무료 세미나 조차도 참석하지 않는다. 고로 한인의 상권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모이기도 싫어하고, 배우기도 싫어하고, 회비내는 것은 더욱 싫어하고, 참 성실히 개미 처럼 일만 하려고 한다. 더욱 한심한 것은 한인들은 새로운 업소를 열때, 한인들이 잘 하고 있는 곳에 들어와 덤핑으로 지역을 반토막 내버린다. 반면 비 한인들은 경쟁이 없는 곳을 찾아서 새로운 자기의 성을 쌓는다. 한인들은 절대로 한인들이 없는 곳에서 영업하려 하지 않는다. 이미 남이 닦아 놓은 밥상위에 숫가락 하나만 더 얹을려는 속셈들이 많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경계가 있다. 하물며 짐승들도 자신들의 영역을 표시하고 그곳에서 자신만의 왕국을 세운다.



그러나 한인들은 남의 영역에 들어가 쉽게 살려고 한다. 그러면서 무한 경쟁시대에 내 사업 내가 하는데 무슨 참견이냐고 오히려 소리친다. 그러나 어디를 바라 보아도 자기 살을 뜯어 먹으면서 살아난 경쟁은 없다. 오히려 시장만 어지럽게 만들고

1 자신이 처참히 부서진 모습을 거듭하여 보면서 긴 한숨을 내 쉬어본다. 최소한 우리는 우리 다음세대를 위한 발판을 마련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때로는 느리고 더딜지라도 남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의 의미는 되새겨 보아야 한다. 변함이 없는 법칙중에서 하나가 심는대로 거둔다는 것이다.


어제의 내 모습이 현재의 나를 만들고 지금의 내 모습이 내일의 나를 있게 할 것이다. 제발 더디질라도 정도를 걷고 나의 자녀들, 나의 동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그리고 이 땅의 이방인이 아닌 주인으로서 삶을 활짝 펼쳐보자.

손자 병법에 병사는 궁지에 몰리면 오히려 두려움을 잃어버리고, 도망할수도 없으면 더욱 뭉친다고 하였다. 그래서 때로는 배수의 진을 쳐서 병사들을 뭉치게 하고 두려움을 잃고 오직 살아야 겠다는 일념을 갖도록 하여 끝내 승리를 이끄는 것을 본다. 지금 세탁인이 처한 위기도 마찬가지다. 주류 사회의 경제 지표는 좋아지고 지금 다우지수가 2만을 넘어 섰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아직도 어두운, 칠흙같이 어두운 터널을 통과 하고 있다. 살겠다는 사람은 없고 모두 죽겠다는 소리만 외친다. 이때가 바로 우리의 마음을 다잡어야 할 때이다.


비록 귀찮고 힘들어도 뭉쳐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수고의 댓가를 정정 당당하게 받아야 한다. 움츠리거나 위축되면 받아야 할 정당한 가격 조차 받지 못한다.

이제 우리도 선진국 미국에서의 삶을 윤택함으로 덧입혀 보자.

사랑하는 세탁인들 화이팅.


  • Young s. Shin

Updated: Dec 25, 2017


참 부모란 존재는 이해할 수 없다. 자식들이 뭔지 어릴 때는 밤을 설쳐가며 쉼없이 보살피다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자식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간다. 자녀가 자라 사춘기를 지나 대학 졸업을 앞둔 때가 되면 부모들의 속아리는 더 깊어지고 자녀와의 관계도 소원해져 간다. 특히 이민와서 먹고 살기에 급급하고, 문화적, 언어적 문제는 자녀와의 심도 있는 대화는 커녕 의사 소통조차도 힘들게 만든다. 혹자의 말대로 자녀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자꾸 정을 뗄려고 하는지 밀어낸다고 한다. 그때가 되면 깊은 한숨과 고독감마저 든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모든 인간뿐 아니라 생명체는 종족 번식이 가장 중요한 것일련지도 모른다. 즉 후대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어렵고 힘든 이민 생활을 견디는 것도 바로 나의 자식들은 나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하겠다는 기대가 힘을 주었을 것이다.


특히 한국과 같은 혈연을 우선시하는 문화에서 자란 우리에게는 더욱 피부에 와 닿는다. 그런데 우리에게 들려오는 소리는 우리의 기대와는 조금 차이가 난다. 다음 세대는 우리보다 더 잘 살기 힘들다는 통계 숫자가 늘어나고, 명문대의 대명사인 아이비 리그를 졸업한 뒤에도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지 못하고 자립 선언 후 집을 나가후에도 렌트비와 학자금 상환, 자동차 페이먼트등에 쪼달리다 다시 부모님 밑으로 돌아오는 캥가루족의 증가는 우리를 더욱더 우울하게 만든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구동성으로 듣는 얘기가 바로 우리 자녀들은 우리보다는 훨씬 더 좋은 환경, 좀더 나은 삶을 살거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급격한 변화의 4차 산업의 열기는 기존 방식의 학습에 젖어 왔던 많은 청년들을 실업으로 몰라 넣었고 질 좋은 직장은 준비된 자들만을 위한 터전이 되어 버렸다. 이런 청년 세대를 가리켜 미국에서는 중간에 낀 세대란 의미의 Twixter, 프랑스에서는 Tanguy라 부르고, 영국에서는 부모의 퇴직 연금을 축낸다고 Kippers, 케나다에서는 Boomerang Kids, 독일에서는 둥지에 눌러 앉아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Nesthocker, 일본에서는 Parasite single 또는 Free arbeiter 라 불리고 있다. 이와 같은 독특한 용어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청년들의 비참한 현실을 그대로 적나하게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Mckensey Global Institute에서 발표한 선진국 경제에서 같거나 낮아지는 소득이라는 보고서에서 선진국 25개국의 2005년과 2014년 가구 소득을 비교한 결과 소득이 더 낮아진 가구의 비율이 65-70%에 이른다고 하였다. 이는 나의 자녀들이 나보다 더 힘들게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예측 가능하게 하는 수치이다. 특히 급속하게 발전한 Artificial Intelligence는 향후 10년 이내에 50%의 노동력을 대치한다고 한다.


이런 속도라면 우리 인간들은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 특히 한인들은 자녀들에게 자신의 경험에 의한 경직된 직업, 예를 들면 의사 변호사 회계사등에 촛점이 되어 있다. 특히 그런 직업군이 미래를 책임져 줄거란 생각에 젖어 있다. 한마디로 하면 어림도 없는 소리이다. 그런 직업군은 미래를 대비하기에는 부적합면이 많이 있다. 이제 세계는 Creative하고 Unique한 자신만의 색과 자신만의 독창성을 요구한다. 이런 세계의 흐름을 등하시하면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인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제 한번 차분히 자녀들을 위해서 눈을 들어 그들의 삶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잘하는지 또한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기본을 튼튼히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 기본에 Math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수학하면 계산을 잘하고 문제를 잘 푸는 것이라 생각한다. 틀렸다. 수학은 논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논리적 사고를 삶속에 적용하기 위해서 배우는 학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은 수학까지도 줄줄 공식을 외워 문제만 잘 풀어 높은 점수만 획득하면 되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수학이란 논리적 사고로 문제를 풀어가는 큰 틀을 의미한다. 논리는 사색을 통해 특정 현상에 대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이해관계를 터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상 현실에 젖어 있는 현대 젊은이들에게서는 사색의 시간을 찾아보기 힘들다. 즉 가상 현실의 노예화 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Coding이다. Coding은 수없이 반복되어지는 일상을 단순화하고 자신에게 최적의 프로그램을 갖게 하는 열쇠와 같다. 일반적으로 기존의 학문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인간의 사고는 경직되고 자신의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속에서 그 틀에 맞추어 사고하고 행동한다. 이 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논리와 추상적 사고이다. 논리와 접목된 추상적 사고는 Creative thinking으로 발전하고 그것을 통한 합리적 세계와의 접목을 통해서 IOT(Internet of Things)와 같은 Cyber 세계로 이어지는 새로운 Platform을 형성하도록 하는 귀중한 열쇠이다. 또한 앞으로 우리 앞에 펼쳐질 가상 현실과 현실간의 연결 체계 그리고 그와 관련한 보안과 보안체계의 분석, 정보 획득과 보관등 다양한 형태의 가상 현실과 현실 사회의 조화 속에서 삶의 터전을 확보하여야 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Coding이다. 더불어 AI의 괄목할 만한 발전은 벌써 새로운 도전앞에 놓여 있다.


최초로 미국 위스콘신 주 대법원에서는 AI가 분석한 법과 판례를 증거로 인정하였다. 이는 앞으로 AI가 인간에 대한 법죄여부까지 판결할 수 있다는 것은 미래의 AI 판사와 검사 앞에서 인간이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우리를 확실히 당황스럽게 한다. AI의 영역이 무한대로 발전하고 이제 고유한 인간의 영역 까지도 침범 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과연 인간의 지능으로 인간의 감성으로 인간의 지혜로 이를 통제 할 수 있는지 간혹은 두렵기 까지 하다. 그러나 염려보다는 준비가 필요하다.


어차피 모든 주요 키는 인간인 우리 자손들에 달려 있다. 그러니 격려하고 용기를 주고 비록 어려움에 처할 확률은 높아가지만 인간은 주어진 역경을 견디며 더 강한 인간을 만드는 발판이 될 것이니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도록 독려해 보자. 마지막으로 희망을 심어 주어야 한다. 희망은 어둠속에서 빛나는 작은 불빛과 같다. 새로운 세상은 꿈을 꾸는 자들의 것이다. 노예가 되느냐 지배자가 되느냐는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노력에 달렸다. 비록 삶이 때로는 고해와 같은 높은 파도를 타고 밀려오더라도 그것을 즐기며 넘어설 수 있다. 그냥 모든 것이 잘 될 거야라는 낙관적인 삶에서 새로운 틀과 새로운 트렌드를 읽어 내며 내가 가야할 정확한 방향을 설정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이 우리의 희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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